(115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268)
긴급출동 119
동네의 아파트 입구에서 만났을 때부터 호이장 녀석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께 겨우 두어 시간 눈 붙이구, 어제 날밤 까구, 내가 낚시 갈 상황이 아녀. 앉으면 그대로 실신헐 것 같어.”
호이장놈이 자신의 승합차 키를 땅바닥에 집어 던지며 말했다.
“내가 운전을 못혀. 내가 운전허면 주꾸미 잡으러 태안으로 가는 게 아녀. 그냥 니놈덜 목숨 붙잡고 지옥으루 가는겨. 그니께 니놈덜이 운전혀.”
말을 마친 호이장놈이 승합차의 뒷좌석을 열고는 들어가 그대로 눕듯이 떨어져 버렸다.
“저것이 뭔 짓을 혔길래 저 지랄이여?”
씁새가 땅바닥에 떨어진 승합차의 열쇠를 집어 들며 물었다.
“뭐여? 네놈이 왜 키를 집어 드는겨?”
총무놈이 씁새를 노려보며 말했다.
“운전헐라고!”
씁새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면허증에 잉크도 안 마른 고령의 초보운전자가 감히 운전을 허겄다고 깨춤을 추는겨? 차라리 죽은 듯이 쓰러진 호이장놈에게 운전을 맡기는 것이 안전허겄다.”
총무놈이 씁새의 손에서 키를 빼앗으며 말했다.
“지랄맞은 놈들! 니놈덜은 고령운전자 아녀? 우덜 죄다 면허증 반납하러 이 길로 경찰서 갈까?”
씁새가 총무놈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지랄에도 연륜이 있는겨! 니놈은 면허 딴 지 3개월 된 고령운전자여. 우덜은 수십 년 운전을 해온 베테랑 운전자덜이고!”
회원놈이 승합차의 트렁크에 짐을 실으며 말했다.
“애새끼덜이 우째 하는 짓이 피라미 잡아놓고 제놈 피라미가 더 크다고 우기는 애덜 같어….”
씁새가 중얼거리며 잽싸게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호이장놈이 그제는 친척 상갓집에 가느라고 서울에 올라갔다가 밤새우고 어제 낮에 파주 쪽이루 부동산 매물이 나왔다구 그쪽이루 한숨도 못자고 이동혀서는 허탕치구서 오늘 새벽에 내려왔다는겨. 그런디, 또 세종시에 매물이 있다구 허니께 거기 갔다가 좀 전에 왔다는겨.”
총무놈이 뒷좌석에 앉아 잠에 빠진 호이장놈을 측은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려서 한잠두 못 잤대는겨?”
호이장놈 대신 운전대를 잡은 회원놈이 물었다.
“잘 시간이 있겄어? 요즘 같은 찢어지는 불경기에 어디구 돈 되는 일이 있다구 허문 가야지. 잠 잘 시간이 워디 있간디?”
총무놈이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 지랄루 주꾸미 낚시 가겄다구 나온 거여?”
씁새가 뒷좌석 쪽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안 가문 장 선장헌티 선입금 헌 거는 우쩌고?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겄어? 우선 태안이루 가서 차량 주차시키고 텐트 먼저 치고, 호이장놈 계속 재운 후에 내일 새벽에 배 타는겨. 그쯤이문 호이장놈도 정신 채릴껴.”
회원놈이 말했다. 새벽에 시간 맞춰서 태안으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위험하게 야간 운전하느니 미리 떠나서 방파제낚시도 해보고 놀다가 텐트 치고 잠을 자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이 호이장놈이 말짱한 정신상태였을 때의 이야기이다. 저렇게 피곤에 절어 정신을 잃은 듯한 상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씩 코까지 골아대는 호이장놈을 태우고 태안에 도착한 시간이 아직은 여유로운 오후 5시경이었다. 선착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의견이 분분할 때였다.
“뭐여? 도착한겨? 그라문 이제 뭐 할껴?”
호이장놈이 부스스 잠이 깨서는 물었다.
“네놈은 그냥 잠이나 자고 있어. 우덜은 방파제루 가던지, 원투 던지러 해수욕장 주변이루 가던지 해볼라니께.”
총무놈이 승합차의 문을 닫으며 말했다.
“천하의 개놈들! 내를 빼고 낚시질을 허겄다는겨?”
호이장놈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승합차의 문을 다시 열고는 뛰어 나왔다.
“그 몸이루 낚시가 되겄어? 네놈 생각혀서 이러는겨.”
씁새가 호이장놈의 부스스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낚시꾼이여!”
호이장놈이 일동을 노려보며 말했다. 선착장 주변, 배 타는 곳 앞, 모두 뒤져 봤지만 올라오는 것은 치어를 갓 넘은 숭어와 비늘만 겨우 식별되는 노래미 새끼였다. 다시 차를 끌고 방파제로 나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 뼘을 넘지 못하는 노래미와 베도라치, 망둥어 정도였다. 어차피 그저 재미로 해보는 낚시일 뿐 진짜는 내일의 주꾸미 낚시였건만, 미끼로 사용하는 갯지렁이가 아까울 뿐이었다. 더욱이 한 쪽으로 주저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호이장놈을 보며 도저히 더 이상의 낚시는 힘들어 보였다.
“조졌어! 내일이나 기대하고 돌아가자구.”
결국 차를 돌려 대천항의 주차장으로 돌아왔고, 한쪽의 잔디밭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두 개의 텐트를 치고 좀 넓은 공터에서 총무놈이 싸온 도시락과 통닭을 안주삼아 맥주가 몇 잔 돌아가자 호이장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되겄다. 나는 이 닦고 먼저 자야겠다. 작작 좀 처먹고 일찍들 누워. 승선명부 쓸라문 새벽 4시에는 낚시점으로 가야 혀.”
말을 마친 호이장놈이 생수병을 한 병 들고는 일어서서 텐트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몇 잔의 맥주가 더 돌아가고… 남은 안주에서 양념이 되지 않은 부분만 골라 씁새는 주위에 모여든 길고양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고, 주위를 정리한 회원놈이 텐트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회원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호이장놈이 이상하다! 얼른 와봐라!”
놀란 씁새와 총무놈이 뛰어갔다.
회원놈이 놀라 주저앉은 텐트 안에는 호이장놈이 누워있었다.
“저… 저… 이 놈이 게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었내벼!”
정말로 호이장놈의 입가에는 허연 거품이 한가득 흘러나와 있었다.
“조… 조졌다! 어여 119 전화혀! 물 좀 가져오고!”
씁새가 호이장놈에게 달려들었고, 총무놈은 급히 119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회원놈은 아이스박스에서 생수를 꺼내들었다.
“야! 호이장! 정신 차려! 야! 정신 좀 차려봐!”
씁새가 축 늘어진 호이장놈의 얼굴을 느닷없이 후려치며 소리쳤다.
짝! 짝! 짝! 씁새가 호이장의 뺨을 때리는 소리가 태안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꺼어윽! 이… 우! 아이! 야… 어!”
몇 대를 두들겨 맞은 호이장놈이 갑자기 몸을 비틀며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 이 자식이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아녀!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잖여. 정신이 완전히 들지 않았어. 호이장! 정신 차려!”
또다시 씁새가 호이장놈의 뺨을 후려갈겼고, 호이장놈은 급기야는 몸을 비틀어 대며 비명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야, 이! 아! 개… 우앗!”
하지만, 회원놈과 총무놈, 씁새의 눈에는 고통에 휩싸여 온몸을 비트는 처절한 모습일 뿐이었다.
“물 뿌려! 경련이 오나보다!”
씁새가 소리치자 회원놈이 호이장놈의 얼굴에 생수를 들이부었다.
“컥! 컥! 컥! 야, 이 개새…”
고통에 찬 호이장놈이 자신의 옷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을 쳤다.
“숨이 안 쉬어지는개비다! 인공호흡이라도 혀야 하는겨? 119는 왜 이리 늦는겨?”
“정신 잃지 않게 뺨을 더 쳐봐!”
놀란 세 놈이 호이장놈의 온몸을 붙잡고 발버둥치지 못하게 눌렀고, 씁새는 다시 호이장의 정신이 나가지 않도록 뺨을 쳐댔다.
“119입니다. 신고하신 분 어디세요?”
드디어 119차량이 도착하고 구급대원 두 사람이 뛰어왔다.
“여기, 여기! 게거품을 물고 실신해서 우리가 정신이 돌아오게 뺨도 때리고 차가운 물도 부어 주고 있었슈!”
씁새와 회원놈이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리고는 119 대원이 풀썩 쓰러져 씩씩 가쁜 숨을 쉬어대는 호이장에게 다가가 소형 플래시를 비추려 할 때였다.
“아녀유! 이 개새끼덜이! 이 개새끼덜이!”
호이장놈이 벌떡 일어서더니 씁새와 회원놈, 총무놈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뭐여? 뭐여?”
“뭐긴 뭐여? 이 닦다가 잠이 들었는디 갑자기 이 잡새끼덜이 우르르 모여서 후드려 패고 지랄이잖여!”
“그라문… 입가에 그 허연 것이… 치약거품여유?”
황당한 구급대원이 호이장놈의 입가를 플래시로 비추며 물었다.
“그… 그러네유. 이 닦다가 잠들어서….”
호이장놈이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아까 막 비명 지르구, 경끼허든데? 몸부림 치구… 막… 신음 지르구… 막….”
씁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라문! 네놈은 귀싸대기 후려치구 차가운 물 뿌려대는디, 비명 안 질러? 이 개새들아!”
호이장놈이 분이 안 풀려 씩씩대며 말했다.
“그라문 시방 이것이 이 닦다가 잠들어서 생긴 해프닝여유?”
구급대원 두 사람이 시뻘겋게 부어오른 호이장놈의 뺨을 보며 물었다.
“그… 그르네유… 우째유? 잘 알덜두 못허구 출동허시라구 혔네유.”
한밤의 해프닝에 구급대원들이 웃으며 돌아갔고, 밤새도록 세 놈은 호이장놈의 잔소리와 천하에 없는 욕지거리를 말없이 들어야만 했다.
“저기… 근디… 호이장님은 왜 귀싸대기가 양쪽이루 시뻘겋게 부어 있대유? 누구헌티 실컷 처맞은 것 같은디?”
장 선장이 탱글탱글하게 부어오른 뺨으로 주꾸미를 잡아내는 호이장놈을 보며 물었다.
“선장님두 이 닦다가 주무시지 마셔유. 죽는 수가 있으니께.”
호이장놈이 걸려 나온 주꾸미 한 마리를 씁새를 향해 냅다 던지고는 대답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