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267)
세상 어디에나 슬픔은 있다
아스팔트는 녹는 듯 뜨거웠고, 바깥의 열기는 한증막과 같아서 차창을 열었다가는 지옥불을 맛볼 지경이었다. 씁새의 생각에도 이런 지옥 같은 더위에 낚시 갈 생각을 하는, 그것도 민물낚시를 가겠다고 나서는 놈이 제정신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옛날 대청댐 비니루 귀신에게 홀려 대형 사고를 낸 후에 심각한 운전 공포증에 걸려 운전대를 잡지 못한 채, 남의 눈치나 보며 남의 차 옆자리에 곁다리로 별책부록처럼 끼어 낚시를 다녀야 했던 씁새로서는 날씨가 어떻든 세상이 어떻든 꼭 낚시를 가야만 했다. 물론, 씁새가 남의 눈치나 보며 곁다리로 남의 차에 끼어 탔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남의 차도 제 놈 차처럼 막무가내로 휘둘러대던 놈이었으므로….
그런데 씁새가 크나큰 결단을 내리고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운전 공포증을 가열차게 떨쳐내고는 드디어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비록 출생한 지 10여년이 지난 승용차일지언정 제법 번듯한 중고차까지 사서 끌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낚시 안 갈껴? 내가 운전헐 테니께 니놈은 장비만 가지고 따라오문 되는겨.”
“ 장롱면허 30년인 놈한티 목숨 맡기기 싫다!”(호이장)
“튀겨 뒤져. 이런 날 낚시 갔다가는 물에 튀겨져서 뒤져.”(총무놈)
“니놈은 결국 초보 아녀? 거기다가 고령운전자. 당장 운전면허증 반납혀.”(회원놈)
결국 어느 한 놈도 씁새의 차에 동승하기를 마다했으며, 더욱이 한증막을 그대로 옮겨온 무더위로 인해 다들 낚시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낚시를 포기할 씁새가 아니었고, 더구나 눈앞에 자신의 승용차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낚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씁새의 승용차는 계속해서 ‘씁새야, 낚시 안 갈거냐? 가자! 낚시 가자’ 속삭이는 중이었다. 결국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를 뚫고 씁새 혼자 초평저수지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시부럴 놈들이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주문서 낚시 모시고 가 주겠다는디 마다혀? 배때지에 기름기가 끼니께 인생이 설렁설렁혀? 촘만놈들!”
쉴 새 없이 욕을 내뱉으며 달려가는 도로는 눈이 부실 정도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우째 혼자 오셨대유? 다른 분덜은 안 오신겨유?”
차에서 내리자 음식점을 겸하는 좌대주인 김 씨가 다가오며 물었다.
“날씨가 지랄이라 다들 집구석에 숨어있겄다드만유.”
씁새가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며 말했다.
“허긴… 날씨가 이 지랄이니께 손님두 없어유. 좌대 손님이라고는 주말에도 한 팀 받기두 힘들구, 음식 먹으러 오는 사람도 없으니께. 이라다가는 폐업할 지경여유.”
김씨가 씁새의 짐을 들어주며 대답했다.
“괴기는 잘 나오남유?”
“이 날씨에 괴기가 나오겄슈? 그나마 따문따문 나오기는 허는디, 그닥 호황스럽덜 안혀유. 물두 뜨거워지니께 괴기덜도 놀덜 안 허나벼유.”
식당의 주차장에서 보트 선착장까지 겨우 20여 미터의 거리를 걸었음에도 씁새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을 지경이었다.
“좌대에 물은 나오지유?”
씁새가 보트에 짐을 실으며 물었다.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오지유. 근디 우덜이 운영허는 좌대가 여섯 개 있는디, 손님두 없구 허니께 세 대만 운영허는 중이여유. 찬바람이 나야 죄다 수리허고 손을 볼틴디, 벌어놓은 돈두 없구 죽을 지경여유.”
김 씨가 배를 저어가며 말했다. 대충 짐들을 좌대에 올리고 간이 샤워장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낚싯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붕어 얼굴을 보겠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덥다고 집에서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빈둥거리기도 무료했고, 근 30여년 만에 자신의 차를 갖게 된 것도 부담 없이 낚시를 오게 된 이유였다.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한낮의 더위는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은 수증기를 가득 채운 채 뜨거운 열기만 쏟아낼 뿐이었다. 저수지의 물도 미지근할 정도로 수온이 높았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찌들은 미동조차 없이 떠있었다. 그 흔하디흔한 불루길 조차도 입질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렸고, 김씨가 닭볶음탕을 건네주고 갔다. 저수지의 건너편으로 가로등이 빛나는 도로 위에 간간이 전조등을 켠 자동차들이 따분하게 지나갔다.
닭볶음탕에 소주 한 잔을 비웠을 때였다. 씁새의 좌대에서 10여 미터 떨어져있는 옆 좌대에서 낚시꾼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제 온겨? 좌대에 타는 거 못 봤는디… 김씨가 닭볶음탕 가져다 주문서 모시구 왔는개비네?’
씁새가 검은 옷차림의 낚시꾼을 보며 중얼거렸다.
“혼자 오신겨유?”
씁새가 옆 좌대의 낚시꾼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낚시꾼이 문득 그 자리에 서서 씁새 쪽을 바라보았다.
“지두 혼자 왔슈. 날씨가 더우니께 낚시허는 사람덜두 없지유? 우덜이 이 넓은 초평지를 죄다 전세 낸 거 같어유.”
씁새의 말대로 초평지의 좌대마다 모두 불이 꺼져 있었고, 검은 물 위에 더욱 검은 모습으로 서있었다.
“하두 더우니께 이게 뭐허는 짓인가 싶기두 허네유. 혼자 오셨으문, 이쪽으루 오셔서 같이 낚시허문서 쐬주나 한 잔 허문 좋겠는디, 좌대라 그러지두 못 허누만유.”
씁새의 말에 낚시꾼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별 대답도 없이 머뭇거리는 낚시꾼 탓에 흥미를 잃은 씁새가 다시 소주에 닭볶음탕을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옆 좌대의 낚시꾼은 씁새와 같은 방향인 뭍을 향해 세 대 정도의 낚싯대를 펴고는 앉아 있었다. 더운 바람은 계속 불어왔고, 단 한 차례의 입질도 구경하지 못했다.
“안 잽히지유?”
씁새가 옆 좌대에 대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 좌대에서 조그맣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억울하고 사무치는 듯한, 분을 참지 못하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옆 좌대의 남자는 앞에 놓인 낚싯대를 쳐다보며 그렇게 울고 있었다.
“뭐…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내벼유?”
사내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씁새가 말을 건넸다. 하지만 여전히 옆 좌대의 남자는 말이 없었고, 울음소리만 들렸다가 사라지고 들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누구나 다 힘든 일이 있지유. 그거 아셔유? 러시아의 체르노빌이라는 마을. 그게 원전 사고로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고 완전히 유령마을로 변했대유. 지금도 방사능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덜 못허구유. 우덜이 보기에는 가장 비참한 마을이잖여유? 근디 그 마을의 어느 집 벽에 이렇게 써 있드래유. ‘세상 어디에고 슬픔은 있다.’ 다만, 안 그런 척 살아가는 거지유.”
씁새가 반쯤 남은 소주병을 기울여 종이컵에 따랐다.
“좌대만 아니었으문 한 잔 드렸으문 좋겄네유. 근디… 시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뭔지 아셔유? 오늘 그렇게 슬퍼서 울고, 오늘 그렇게 억울해서 분노했어도… 내일도 그렇다는 거지유. 하루만 슬프고 억울하면 월매나 좋겄어유. 세월이 가문 다 잊혀진다구 허잖어유? 그런 드러운 거짓말이 워디 있대유? 잊혀지는 게 아니라, 잊은 것처럼 생각하문서 사는 거지유. 시상 사는 일이 절대루 행복하지만은 않드라구유. 슬픈 일이 더 많고, 억울한 일이 더 많지유. 근디, 그런 거 죄다 생각하문서 살문 시상 살아가기 힘드니께 생각을 애써 안하문서 살라구 하는 거지유.”
씁새가 마지막 잔을 채웠다. 문득 김씨에게 소주를 한 병이 아니라 두 병을 주문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간간이 불어오던 뜨거운 밤바람도 멈췄고, 찌들도 멈춰선 지 오래였다.
떡밥을 갈아야 했지만, 왠지 그러기도 싫어졌다. 옆 좌대의 낚시꾼의 울음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지가유, 별명이 씁새여유. 별명처럼 주위 사람덜헌티 온갖 사고는 다 치고, 온갖 해괴한 일을 다 벌리고 댕겨서 그런 별명이 붙었지유. 그러니께 남덜은 ‘저 씁새란 놈은 팔자두 편한 놈이여.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덜 괴롭히고 지 멋대루 허니께 월매나 행복허겄어?’ 그러드라구유.”
저수지 중간쯤에서 커다란 물소리가 들려왔다. 잉어라도 뛰어 오른 모양이다. 구름이 벗겨진 하늘에는 처량한 초승달 하나가 떠 있었다. 개구리의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지라구 슬프고 화나는 일 없었겠어유? 억울한 일 없이 그저 순탄시럽게 살아왔겄어유? 친한 사람에게 배신두 당해보구, 보증 잘못 섰다가 집두 날리구,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버리기도 했구, 시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똑같은 일들을 겪으문서 살아왔지유. 그래도 그저… 그저 그런 일 없었다는 듯이 사는 거지유.”
씁새가 비어버린 종이컵을 구겼다.
“차마 힘내시라는 말은 못 허겄구먼유. 월매나 힘들고 억울한지 알지도 못허는 사람이 그런 말 허문 안되지유. 그저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만 더 슬펐으문 좋겄네유.”
씁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자 지는 들어가서 잠을 잘까 혀유. 괴기도 안 잽히구 오늘 낚시는 증말루 재미없네유.”
그리고 밤새 옅은 잠을 자는 씁새의 귀에 슬피 우는 낚시꾼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상황은 여전했다. 뜨거운 열기와 태양, 마치 불가마에서 불어오는 것 같은 뜨거운 바람. 다만, 밤새 울던 옆 좌대의 낚시꾼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없었던 듯, 사람이 한 번도 타지 않았던 좌대처럼 깨끗하기만 했다.
“뭔 소리래유? 어제 좌대 탄 사람은 씁새님 한 분 밖에는 없었구먼유. 그 옆에 좌대는 보수두 안 혀서 빌려주덜두 못해유.”
좌대에서 나오며 김씨가 말했다. 그랬다면 어제의 그 낚시꾼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좌대에 비치해둔 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돌아보았다. 의자가 있기는 있었다. 낡고 오래되어 빛바랜 의자 하나. 어쩌면 저 의자가 술에 취해 사람으로 보였던 것은 아닐까? 수많은 낚시꾼들의 이야기가 스며있을 낡은 의자 하나. 그렇다 해도 밤새 들려왔던 슬픈 울음소리는 무엇이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