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아는 형님
초여름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논의 벼들이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의 수로에도 저수지에서 흘러온 물들이 한껏 흘러내렸다. 상쾌한 아침바람을 타고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이슬들을 털어냈다.
“완벽혀!”
호이장놈이 킁킁거리며 바람 냄새를 맡았다.
“워뗘? 짠내 나는 바다냄새보담은 훨썩 낫덜 안혀? 가끔썩 이렇게 민물낚시 하는 재미도 있어야 하는겨.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고, 완벽하덜 안혀?”
호이장놈이 한껏 신이 나 있었다.
“예미… 서천 쪽이루 광어가 번호표 뽑고 대기 중이라는디, 뭔 먹덜도 못하는 붕어새끼 잡자고 이 난리여?”
총무놈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이 썩을 종자는 낭만이 없어요. 가끔은 고요한 저수지에서 찌를 바라보는 낭만도 필요한 거여. 먹자구 괴기 잡을 게 아니라, 낭만을 잡는다고 생각허란 말여. 썩을 종자야!”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낭만 같은 소리허구 자빠졌네.”
총무놈이 같이 소리를 질렀다.
“여허튼 이 동네에 내가 아는 형님이 있그덩. 마을 위쪽이루 꽤 유명시런 저수지가 있어요. 근디 요새 붕어덜이 월척급이루 쏟아진다는겨. 무엇보담 배쓰라는 외래종자가 이 저수지에는 없댜. 그 아는 형님이 괴기 잡으러 내려오문 형님 집이서 재워주고 다 해줄 테니께 한 번 내려 오라는겨.”
호이장놈이 신이 나서 말했다. 호이장놈이 아는 형님이라는 사람은 호이장놈의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었다. 지금 가고 있는 저수지의 마을이 호이장놈이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이기도 했고 한 집 건너 친척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이기도 했다. 작년에 호이장놈의 친척이 돌아가시자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아는 형님이 낚시도 할 겸 내려오라고 하자 고향도 방문할 겸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근디… 지금이 한창 농사일로 바쁜 시기 아녀? 괜히 그 형님 댁에 갔다가 폐만 끼치는 거 아녀?”
회원놈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아녀! 시방은 모내기두 끝났구, 밭작물두 다 심궈서 할 일이 없어. 그러니께 아는 형님이 낚시허러 내려오라는 거여.”
호이장놈의 말대로 길옆의 논에는 파릇파릇한 벼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큰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가자 커다란 저수지 제방과 그 앞으로 마을이 펼쳐졌다.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 저수지 제방의 바로 앞집에 호이장놈이 차를 세웠다.
“왔는가?”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마당에 서 있다가 씁새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호이장놈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자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이 말했다.
“시골 구석까정 오니라고 고생혔어. 안적 아침 못 먹었지? 어여 들어가 아침부텀 먹어.”
새벽부터 떠나오느라 안 그래도 출출했던 녀석들이 마지못한 듯 집안으로 들어섰다. 마을이 제법 부촌인 듯, 개조된 한옥이 멋스러웠다.
“변변히 찬두 없슈. 짠지허구 건건이뿐이라 내놓을만두 허덜 안혀유.”
아는 형님의 부인이 차려준 아침상을 받고 막 한 술 뜨려고 할 때였다.
“덕배 있는가? 논빼미 피 뽑으러 가야지? 월레 웬 손님들이여? 손님덜 왔어?”
집 안으로 노인 한 분이 들어서며 말했다.
“가야지유. 안 그려두 막 준비허구 나갈 참여유. 서울서 손님덜이 내려와서유.”
아는 형님이 말했다.
“그려? 그라문 논일 도와주러 온겨?”
“아녀유. 이 손님덜은 낚시허러 온겨유.”
“그려? 낚시허러 왔어? 논일루 바쁜디 한가로운 분덜이네? 팔자 좋은 분덜이네?”
노인이 아침을 먹고 있는 씁새들의 평상 옆으로 앉으며 말했다.
“아, 형님. 야가 누군지 알겄슈? 야가 어릴 적에 웃골에 살다가 서울로 올라간 창수 아재 아덜여유. 어릴 적에 별명이 뭉치였잖여유. 사고뭉치. 우석이 아재네 볏단에서 불장난허다가 볏단 홀랑 태워먹은 갸여유.”
아는 형님이 호이장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려? 야가 뭉치여? 장마 때 저수지서 떠내려 온 붕어 잡겄다구 불어난 냇물에 들어갔다가 지놈이 떠내려가는 바람에 온 동네사람덜이 난리 치문서 구해낸 뭉치여?”
노인이 호이장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호이장놈이 뻘쭘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려? 자네가 뭉치여? 담뱃잎 찌우고 밤에 저수지서 목간허는 여자덜 훔쳐보다가 뒤지게 처맞은 뭉치여?”
“야. 맞어유. 지가 뭉치여유.”
머리만 벅벅 긁으며 뻘쭘해 하는 호이장놈을 보고 있는 일행은 웃느라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려? 근디, 낚시 왔어? 논일로 바쁜디?”
노인이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는 여서 살았었으니께 이우지(이웃)여. 근디 이우지서 그라는 거 아녀. 덕배가 논일루 바쁜디, 자네는 낚시나 허겄다고 한가롭게 놀러와? 우덜이 모두 자네 살려내겄다고 그 장마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혔는디, 창수네 볏단 태울 때두 온 마을 사람덜이 물지게 지고 불 끄느라고 난리였는디, 이우지서 그라는 거 아녀. 덕배네 논빼미 피 뽑구 나서 낚시혀두 될거여. 안 그려?”
“아이구, 형님. 그라덜 말어유. 놀러 온 사람덜헌티 우째 그런대유?”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이 말리고 나섰지만, 별 수가 없었다. 노인의 험상궂은 얼굴에 주눅이 든 씁새들이 아는 형님이 내 놓은 장화들을 주섬주섬 신고서 논으로 팔자에 없는 피 뽑으러 가야만 했다.
“옘병… 그래서 바다낚시나 가자니께.”
광활한 논으로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피를 뽑느라 죽을 맛인 총무놈이 중얼거렸다.
“씨벌… 저 호이장놈 아는 형님이 우덜 일 시킬라고 부른 거 아녀?”
“그만 혀. 이 논에 피만 뽑으면 낚시하러 올라갈 수 있잖여.”
저마다 씩씩거리며 피를 다 뽑았건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의 논뿐 아니라, 온 동네의 논들 모두 피를 뽑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우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예미럴! 이 지랄을 허다가는 이 마을에 뼈를 묻겄다. 아조 머슴 부리듯 혀.”
씁새가 점심으로 배달해 온 짜장면을 먹으며 씩씩거렸다.
“우쩌겄냐? 피두 다 뽑았으니께 이제 할 일 없을껴. 어여 점심이나 먹고 낚시하러 가자고.”
호이장놈이 면목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씁새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러고 말여. 만석이네 과수원에 원두막이 무너졌댜. 지난번에 비가 엄칭이 왔잖여. 그놈의 원두막이 썩은겨. 그거 새로 지어야 혀. 이우진디, 이우지 원두막이 무너졌는디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이여.”
사색이 다된 씁새들이 또다시 과수원 토목공사에 내몰렸다.
“창원이네 고추밭이 안적두 지줏대를 안 세웠다네? 이우지서 못 본 척해서 되겄는가?”
이번에는 씁새패들이 고추밭으로 내몰렸다.
“이리 바쁜디 다덜 도와주니께 월매나 좋아? 이려서 이우지가 좋은겨.”
은 신이 나서 씁새패들을 끌고 다니며 호탕하게 떠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은 말리는 척했지만, 얼굴에는 사악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옘병! 담부텀은 모르는 형님네루 낚시를 가야겄다. 제기랄!”
중노동에 시달리며 아픈 허리를 붙잡고 씁새가 중얼거렸다. 어느새 해는 거의 서쪽으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
“씨불… 결국 밤낚시나 해야 될 판이여. 이게 뭔 지랄인겨.”
총무놈이 애꿎은 고춧대를 후려치며 말했다.
“이걸 우짠대? 모처럼 낚시 왔는디, 일만 허네? 참이루 맴이 편안치를 안혀.”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이 씁새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가득 넘쳐 흐르는 사악한 미소는 지워지질 않았다. 불만과 아쉬움, 그리고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일을 끝내고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네로 돌아와 겨우 차에서 낚싯대를 꺼내며 밤낚시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미 해는 넘어가고 저녁의 어스름이 막 몰려올 즈음이었다.
“어이, 덕배!”
또다시 아는 형님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노인이 들어섰다. 덩달아 씁새패들이 화들짝 놀라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야, 형님.”
아는 형님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해서 대답했다.
“웃골에 광욱이네 담벼락이 무너졌잖여? 접때 비 많이 올 때. 그려서….”
순간 씁새들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꺼내던 낚시가방과 물건들을 모두 차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월레? 자네덜은 워디 가는겨?”
“그게유, 오늘 밤에 일이 생겨서 급히 올라가야 허는구먼유.”
씁새와 총무놈이 합창하듯 소리쳤다.
“그려? 밤낚시 안 허고?”
아는 형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랄라고 혔는디, 급히 일이 생겨서 올라가야 허누만요.”
총무놈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우쩐대? 웬만허문 저녁이라도 먹고 올라가지? 모처럼 낚시허러 고향에 왔는디, 일만 시키고 그냥 보내야 혀?”
아는 형님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녀유, 됐시유. 우덜두 그러고 싶은디, 워낙이 급허다고 혀서유. 이만 올라가 볼게유.”
호이장놈이 부리나케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라문 뭐 보잘 것은 없지만, 집이서 먹을 음식 좀 싸줄 테니께 지달려유.”
아는 형님의 부인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녀유, 아녀유. 워낙이 급혀서. 그라문 담에 뵐께유. 지들 올라갈께유.”
씁새들이 합창하듯 소리치고는 그대로 차를 몰아 마을을 급히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걸 우쩐대유? 낚시허러 왔는디, 미안시럽게 일만 시켰네유. 근디, 갑자기 저리 가버린대유?”
호이장놈의 아는 형님이 멀어지는 차를 보며 말했다.
“근디, 광욱이네 담배락이 우쩐대유?”
“그거이 우차피 무너진 거 내비둔다대? 담배락 또 올리봐야 돈만 든다고 그냥 내비둔대는겨.”
“그라문 이우지서 도와줄 일이 없겄네유?”
“그려, 그려. 근디… 뭉치가 일만 허구 가서 우쩐대? 밤낚시라도 허구 가문 닭이라두 삶아 줄라고 혔는디… 영 미안시럽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