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265)
기묘한 이야기(하)
낚시를 할 수 있는 여건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저수지라고 부르기엔 턱도 없고, 소류지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둠벙을 높은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었고, 잡풀들과 넝쿨이 바닥에 깔려있어 낚시 자리 고르기에도 힘이 들 정도였다. 근처에 공터도 보이지 않아 텐트조차 치기 어려웠고, 겨우겨우 풀을 깎아낸 후에야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각자 맘에 드는 자리를 골라 낚시 자리를 만드느라 모두들 온몸에 땀범벅이 되었다.
“이 지랄을 하문서 낚시를 허야 되는겨?”
총무놈이 바닥에 가득한 넝쿨을 뽑아내며 씩씩거렸다.
“옘병! 되든 안 되든 방파제로 나가서 우럭새끼라도 잡아야 허는 것인디, 이게 뭔 지랄이여?”
회원놈도 겨우겨우 자리를 고르고는 받침대를 꽂으며 말했다. 저녁시간으로 가고 있었지만 어둠은 아직 깔리지 않았다. 자리를 만든 일행들이 낚싯대를 던져 넣었건만 누구 하나 입질을 보지는 못했다. 처음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은 호이장놈이었다.
“야, 씁새야. 기분이 좀 이상하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호이장놈이 씁새에게 말했다.
“뭐여? 한여름에 감기 기운이여?”
“아녀. 몸이 찌뿌둥헌 것이 기분이 영 드러워….”
호이장놈이 몸을 비틀며 대답했다.
“그려? 나두 그런디.”
총무놈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몸에 이상을 이야기한 것은 호이장놈과 총무놈만은 아니었다. 회원놈도 몸이 찌뿌둥하다고 하였고, 씁새마저도 무엇인가 몸을 짓누르는 듯 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좀 이상한디… 주변에 공기가 틀려진 것 같어.”
호이장놈이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호이장놈 말대로 둠벙 안의 공기가 처음과는 달라져 있었다. 마치 비가 오기 전의 묵직하며 눅눅한 공기와도 같았다.
“꼭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인디?”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맑아있고, 햇살은 뜨겁게 비추는 중이었다.
“뭔가 모르게 기분이 상당히 더러워….”
씁새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눅진한 공기는 잠시 후 한바탕 시원한 바람이 나무 사이로 불어오며 언제 그랬냐는 듯 신기하게도 싹 가셔버렸다. 그리고 그 이상한 공기가 둠벙을 감싸고 있었을 때는 미동도 없던 찌들이 일제히 움직였고, 박 사장의 말대로 준척급의 붕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결국 바람이 좀 불어야 괴기가 잽히는 곳이라는 말이구먼.”
두 마리째 붕어를 살림망에 담으며 회원놈이 말했다.
“그래두 아까 그 이상한 기분은 대체 뭐여? 이 둠벙이 밑으로 가라앉은 분지 형태도 아닌디, 어째서 공기가 그리 무거웠던 거여?”
씁새가 낚싯대를 다시 드리우며 말했다. 가라앉은 공기를 쫓아냈던 시원한 바람은 그리 길지 못했다. 또다시 바람이 잦아들자 둠벙으로 무겁고 음침한 공기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입질이 일제히 끊긴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더러운 곳이구만!”
씁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말했다. 온몸이 저리는 듯 기분 나쁜 공기가 둠벙 안에 가득 자리 잡았다.
“여기 여산에 있는 궁리 둠벙 비슷하덜 않어? 거기두 이 지랄루 공기가 무겁고 기분 나빴는디….”
호이장놈이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거긴 비가 올라고 혀서 그랬던 것이고, 결국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상여집에 비 피하러 들어갔다가 난리가 났었지.”
회원놈이 말했다.
“비 때문은 아니여. 거기 주민들이 궁리 둠벙이 음기가 세다고 낚시하러 갈 생각 말라고 했잖여. 호이장놈이 기분이 이상하다고 먹은 것 다 토하고 지랄을 했는디, 기억 안 나는가?”
총무놈이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옘병… 여기도 만만치가 않은디….”
씁새가 둠벙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사이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며 둠벙으로는 을씨년스러운 물안개가 가득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똑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산 위에서 바람이 불어 내리면 끈적한 공기가 사라지고 입질을 시작했고, 바람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끈적하고 무거운 공기가 둠벙을 가득 채웠다.
“그냥 철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디….,”
무거운 공기가 둠벙을 덮어오자 호이장놈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좋겠다. 영 기분이 더러워서 낚시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뭔 기분이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순식간에 가라앉어. 기분 참 드럽네….”
총무놈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때였다.
“첨벙!”
무엇인가 둠벙의 중앙에서 힘차게 뛰어 오르더니 엄청난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뭐여? 이무기여?”
“잉어 같은디?”
“잉어 아녀! 저렇게 큰 잉어가 워딨어?”
“가물치! 가물치!”
“지랄! 가물치는 결단코 아녀!”
낚시꾼의 본능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하늘에 떠 있는 달빛을 받으며 환하게 수면이 드러난 둠벙의 가운데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결이 퍼지고 있었다.
“낚싯대! 낚싯대!”
어느새 자리에 앉은 씁새패들이 줄지어 낚싯대를 던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눅진하고 불쾌한 기분은 온몸을 감싸 왔지만, 아까 어마어마한 놈을 본 후인지라 낚시꾼의 본능이 불처럼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찌는 미동도 없었고, 불쾌함과 기분 나쁜 공기만 흘러 다녔다.
“저기… 낚시꾼 아녀?”
기분 나쁜 공기 때문인지 연신 침을 뱉어대던 총무놈이 둠벙의 건너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월레? 어느새 낚시꾼이 와 있대?”
건너편, 직선거리로 100여 미터 정도의 건너편 나무 밑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달빛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람 하나.
“언제 오셨대유?”
씁새가 건너편에 대고 소리쳤다.
“괴기 좀 잽혀유? 여기 좀 이상허덜 않어유?”
건너편의 사람에게 계속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무 등걸 아니여?”
호이장놈이 건너편을 보며 말했다.
“아녀. 조금씩 움직이는디?”
분명히 건너편의 낚시꾼은 부스럭거리듯이 조금씩 움직이기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었다.
“뭔가 이상한디….”
분명히 사람의 모습이긴 하지만, 느낌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두운 그림자의 형태는 머리와 몸통, 그리고 앉아있는 자세의 다리까지 그대로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느낌으로 싸하게 지나가는 기분은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우욱!”
갑자기 호이장놈이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이놈 또 도지는겨?”
호이장놈이 헛구역질을 하는 때는 영락없이 무언가 위험하거나 알 수 없는 기운에 휩싸였을 때였다. 소양강댐 낚시에서 귀신을 보았을 때도 헛구역질을 했었고(이 소양강댐 여자 귀신은 낚시꾼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궁리 둠벙에서도 그랬으며, 주철리 저수지에서는 구역질을 하다 철수하며 전날, 마을 총각이 저수지에서 자살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더욱 무서웠던 것은 부여의 모 저수지에서 극심하게 구역질을 하고 철수한 뒤 우리가 낚시하던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건져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가자!”
머릿속까지 쑤시는 듯한 더러운 기분이 가득 차오르자 씁새가 소리쳤다. 분명히 무섭거나 공포스러운 기분은 아니었다. 무언가 심각하게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본 기분이었다. 일행들이 주섬주섬 장비들을 거두어 들일 때였다.
“첨벙!”
또다시 둠벙의 중앙에서 무언가가 뛰어 올랐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누구도 돌아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아니면 무언가에 쫓기는 듯, 급하게 손만 움직일 뿐이었다.
“저… 저거!”
둠벙을 빠져 나오며 뒤를 돌아보던 총무놈이 소리쳤다. 둠벙 건너편에 앉아있던 사람 모습의 그것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그것이 일어서 있었고, 옆의 나무에 손을 짚고는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우욱!”
호이장놈의 구역질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거의 달리듯이 일행들은 길을 내려가 공터의 차로 순식간에 올라탔다. 그제야 호이장놈의 구역질이 멈춰있었다. 그대로 차를 몰아 왔던 길을 내려가는 중에 또다시 그들이 목격한 것은 달빛을 받으며 서있는 을씨년스러운 성황당과 그 아래에 쪼그려 앉아있는 노인이었다. 할머니였는지, 할아버지였는지도 구분이 안 될… 그저 노인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낚시에서 돌아온 이후 한동안 호이장놈은 악몽을 꾸었다고 했고, 총무놈과 회원놈도 며칠을 아주 불길한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세상 태평스럽고 개차반인 씁새는 하루 만에 기운을 차려서 돌아다녔지만. 그 둠벙이 유난히 음기가 강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둠벙처럼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는 알 수 없는, 기묘한 곳들이 산재해 있을 것이고,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