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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연재_낚시 꽁트 씁새(254)-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낚시 꽁트 씁새

연재_낚시 꽁트 씁새(254)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분명히 약도대로 길을 따라 왔건만, 대물들이 펄떡인다는 소류지는 보이지 않았다. 소류지는커녕, 차 하나 겨우 달릴만한 작은 오솔길 옆으로 개울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헌겨. 그 빌어먹을 놈헌티 당헌겨.”
총무놈이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그러게 지대루 된 저수지서 허자니께 뭔 사단이 났다구 그 씨불넘 말을 믿고 왔냐 말여. 그 놈은 숨 쉬는 거 빼고는 모두 거짓말이여.”
호이장놈이 좁고 험악한 길을 운전해 나가느라 진땀을 빼며 말했다.
“개눔… 인자는 세월 좀 처먹었으니께 달라졌을 줄 알았드만, 안적두 그대루여.”
씁새가 좌석 등받이를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늘 스쿠터를 타고 다녀 딸딸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낚시점에서 침을 튀기며 알려준 소류지를 찾아 가는 중이었다.
“워미! 느문 물어. 형님 이거 뻥 아녀. 느문 물어. 물문 월척여. 던져서 찌가 스잖유? 3초만 지달려! 단박에 찌가 스멀스멀 올라 오는겨. 채문 월척여. 뻥 아니라니께.”
며칠 전, 오랜만에 민물낚시를 가보자고 들른 낚시점에서 딸딸이가 침을 튀기며 떠들었다.
“지랄! 니놈 말을 믿느니 김정은이를 믿는 게 낫어. 니놈헌티 당헌 게 몇 번인 중 알어? 썩을 놈.”
씁새와 호이장, 총무놈이 이죽거리며 딸딸이 녀석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를 않았다.
“에헤이… 이 성님덜은 오랑캐 빤쓰를 겹겹이 입으셨다니께. 이번엔 진짜라니께유. 워디 가 보셔유. 이런 고급진 정보를 누가 알려줘유? 나나 되니께 알려주는겨.”
“그려서 니놈이 작년에 알려준 소류지 갔다가 우덜이 뭔 일을 당헌 중 알어? 밤새도록 중태기헌티 시달리다가 빈 바구니루 돌아왔어. 니놈 말을 우덜이 믿겄어?”
씁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뿐이여? 니놈이 조치원 쪽이루 환장시럽게 멋진 비밀 저수지가 있다고 혀서 찾아 갔드만, 산등성이 홀딱 뒤집어서 아파트 짓고 있던디, 워디서 개수작이여?”
호이장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이… 이 성님덜이 왜 이랴? 그건 지가 얘기 드렸을 때 얼릉 가셨어야지유. 이미 저수지 죄다 뭉개버린 후에 가셨으니께 그런거지유. 그려서 지가 성님덜헌티 이번에는 증말루 지대루 된 정보를 드리는겨유. 믿고 가보시래니께유. 느문 나온대니께유!”
결국 이번에도 귀 얇기로 세상 둘째 가라면 서러운 개차반낚시회놈들이 딸딸이의 말만 믿고 소류지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었다.
“아조, 그 지랄맞은 놈헌티 수시루 당허는구먼….”
총무놈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잠깐! 워디서 물 흐르는 소리 안 들려?”
갑자기 회원놈이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차의 시동을 끄고 귀를 기울이자 정말 어디선가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졸졸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꽤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소리였다.
“이 길이 증말루 맞는개벼. 저 물소리 따라가문 딸딸이가 얘기헌 소류지가 나오는 거 아녀?”
씁새가 차창을 열고 밖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물소리 하나에 힘을 얻은 녀석들이 다시 기운을 차리고는 군데군데 움푹 파인 산길을 차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길 옆으로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계곡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패거리들의 기분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른 끝에 제법 넓은 평지가 나왔고, 작은 집 한 채가 옆으로 나타났다.
“거의 다 온 개비다. 저 집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올라가보자.”
씁새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호이장놈이 길옆으로 차를 세우고 일행들이 우르르 내려 외딴집 앞으로 다가갔다.
“이거… 뭣이가… 이상헌디?”
집 앞으로 다가간 씁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외딴집은 거의 폐가 수준이었다.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담장은 폭삭 주저앉았고, 조그만 장독대의 장독들은 모두 깨져 있었으며 기역자 집의 오른쪽 방은 거의 무너지다시피 되어있었다. 방과 방을 잇는 대청마루는 진흙탕으로 뒤덮여 있었다. 열려진 왼쪽 방 안에도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마당의 한 쪽으로 보잘것없는 가재도구들이 나뒹굴고 있는 중이었다. 작은 마당도 진흙과 돌들로 정신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계셔유?”
호이장놈이 조그맣게 집안을 향해 말했다.
“사람 안 사는 폐가 아녀?”
총무놈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아닌 거 같은디? 살림살이가 일부러 버린 것 같덜 않어.”
씁새가 구석으로 놓인 그릇들을 보며 말했다.
“뉘시래유?”
그때, 집 뒤에서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나오며 물었다. 그리고 그 뒤로 같은 나이대의 노인이 뒤따라 나오고 있었다.
“그… 저기 뭣 좀 여쭤 볼라는디유… 그… 이 근처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드만… 그게… 워디래유?”
총무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수지유? 이짝이루는 저수지가 없구유… 이 길루 쭉 올라가문 둠벙은 있구먼유.”
할머니가 대답했다. 할머니의 손이 흙탕으로 뒤덮여 있었다. 뒤에 서서 씁새 일행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등이 굽거나 하지는 않았고, 얼핏 정정해 보이기는 했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 그렇구먼유… 감사허구먼유. 안녕히 기세유.”
호이장놈이 주춤주춤 물러나며 말했다. 차를 타고 떠나며 바라본 차창으로 수심 가득한 두 노인이 반쯤 허물어진 집을 배경으로 애처롭게 서 있었다.
“접때 비가 엄칭이 오드만, 그때 저 지경이 된 모냥이여.”
씁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청주, 이짝이루 대단혔는 모냥이여. 뉴스 보니께 증말루 딱허드만.”
회원놈도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두 산간이라 비가 엄칭이 왔내벼. 저 지경이문 면이나 군에서 지원 나오겄지? 노인네 두 분이서 저거 치울라문 막막헐 것인디….”
총무놈도 혀를 차며 말했다.
“나오겄지….”
씁새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결국 차가 움푹 파인 언덕길을 오르며 눈앞으로 딸딸이가 말했던 작은 소류지가 나타났다. 그간의 비에 소류지는 가득하게 물이 고여 있었고, 저 끝의 낮은 둑으로 물이 넘쳐흐르는 중이었다. 올라오면서 보았던 계곡의 물이 이 소류지에서 내려가는 물인 것 같았다.
소류지를 빙 둘러서 나무들이 울창했고, 나무 그림자에 파묻힌 소류지는 글자 그대로 엄청난 대물이라도 튀어 오를 듯, 어둑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오! 이거 대박인디?”
“딸딸이가 이번에는 거짓말을 허덜 안혔네? 귀여운 자식!”
“증말루 이무기라도 살 것 같은디?”
“이건 보물이여. 완벽헌 노다지여.”
소류지를 보고 들뜬 씁새 패거리들이 차에서 내려서는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우뗘? 밤낚시 될 것 같은가?”
“암만! 두 말 허문 잔소리여.”
“증말루 느문 나오겄어.”
“대단혀다. 물 깊이두 꽤 되는 것 같은디….”
“그 딸딸이 놈은 우치키 이런 곳을 알게 된겨?”
저마다 들뜬 목소리로 신이 나 있었다.
“그러면 낚시를 시작혀야지?”
씁새가 샛눈을 뜨며 물었다.
“그려! 낚시를 혀야지. 낚시꾼이문 낚시를 혀야지!”
호이장놈이 씁새의 눈을 보며 흔쾌히 대답했다.
“이건 월척이 아녀. 대물낚시여!”
회원놈과 총무놈도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소류지의 존재를 확인한 씁새 패거리들은 다음 달에 다시 오기로 하고 산길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아까 보았던 두 노인네의 폐허가 된 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멈추었다.       
“할머니! 이거 어디루 치워유?”
씁새가 삽으로 마당의 구석으로 긁어모은 흙더미를 쌓으며 소리쳤다.
“이 솥단지허구 그릇덜은 저 개울가루 가져가서 씨쳐 올께유.”
호이장놈이 큰 광주리에 그릇들을 담아 회원놈과 옮기며 물었다.
“월레? 아자씨덜이 웬일이래유?”
씁새 패거리들의 소리에 뒤꼍에서 일하던 노인 내외가 앞마당으로 나오며 물었다.
“그게유, 저 위에 작은 둠벙 구경허구서니 내려오다 보니께 영 거시기 허드먼유. 그려서 냉큼 치울라구유.”
씁새가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리 안 허셔두 되는디… 안적은 읍내 쪽이루 물난리 난 곳이 많다구 우덜 집은 낼모레 와서 도와준다구 면에서 그랬는디.”
할아버지가 황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라문 두 분이서 한데서 주무실껴유? 우선 주무실 곳이라두 만들어야지유.”
호이장놈이 왼쪽의 안방으로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들어가며 말했다.
“이… 이라문… 옷이 더러워 질건디….”
할머니가 더러워진 손을 치마에 썩썩 닦으며 말했다.
“우덜이 낚시꾼덜이라 옷은 워낙이 더러워져유. 걱정허덜 마셔유. 낼 점심때까정 우치키 치워 드리께유.”
씁새가 부서진 장독대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갑자기… 고마워서… 우치키 대접두 못 허는디….”
할머니가 얼굴 가득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 걱정 마셔유. 우덜은 텐트두 있구유, 밤에 먹을라구 라면두 싸왔구유, 그저 아무 걱정 마셔유. 별 도움이 안 되드라두 도와드리께유. 시상 어려우문 어려운대루 사는 거지유. 원젠가는 즐겁게 살 날두 있겄지유. 노바닥 이런 힘든 일만 생기겄어유?”
씁새가 깨진 장독조각을 나르며 말했다. 그때, 호이장의 승합차에서 틀어 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였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끝)

 

(사족 : 우덜이 밤 꼴딱 새우문서 그 영감님댁 깨끗이 청소해 드렸구먼유. 월척 수백 마리 잡은 것보담 더 뿌듯했슈. 그러고 딸딸이가 얘기했던 소류지를 다음달에 찾아갔는디… 느문 물어유! 증말루 느문 물어! 근디 채문 가재여. 느문 물구, 채문 가재여. 옘병! 밤새 가재헌티 시달리고 철수허다가 그 노인분덜 집이루 몰래 지나가다가 딱 들킨겨! 밥 먹구 가라고 성화부리시길래, 맛있는 보리밥에 열무김치 비빔밥 얻어먹고 왔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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